즐거운 장례식 (인간의 죽음, 장례문화, 그리고 길냥이)

소식

어제 새벽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아요. 집안 사정을 모두 오픈할수는 없지만, 내막을 알고 있는 저는 왜 아무도 슬프지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때와는 너무 대조적인 분위기. 이번 장례식은 꽤나 즐겁습니다. 자세하게는 말씀을 못 드리고 간단하게 썰을 풀자면 그건 잠시 뒤 다시 언급해 볼께요.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한 번 목격한 이후로 저는 죽음에 대해 조금은 무뎌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다 떨어지는 과정에도 과학적인 모습이 엿보입니다. 우선 심장과 가장 먼 곳 부터 서서히 살과 근육이 경직되어갑니다. 그렇다면 심장과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요? 그렇습니다. 발 입니다. 그렇기에 발부터 금방 표시가 납니다. 엄청 차가워집니다. 그리고 멍이 든 것 처럼 변합니다.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요. 기압 때문이죠. 그렇게 조금씩 심장 가까이... 가까이 몸의 변화는 찾아옵니다. 손도 차가워지기 시작합니다. 임종의 순간을 간접 경험하신 분들은 아마 대부분 병원일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죠.


"아직 청력은 괜찮으니까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귓가에 대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청력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심장이 멈추고 혈류가 끊기면 뇌 세포들이 산소 부족으로 빠르게 손상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뇌의 부위마다 손상 속도가 다른데 시각이나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은 빠르게 기능을 잃는 반면, 청각을 처리하는 뇌줄기(brainstem)와 청각 피질은 상대적으로 더 오래 버티죠. 그렇기에 청력은 인간의 죽음 중 가장 오랜 시간동안 남는 감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진짜가 아닌 사람

할머니 장례식

아무튼 이번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친척분들 중 그 누구도 최후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요양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이후에 다들 장례식을 치렀죠. 저희 어머니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때는 연락을 받으셨던 그 순간부터 슬픔을 감추지 못하셨는데 이번 할머니 죽음은 마치 주변 아는 사람이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친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 입장에서는 계모였습니다. 또한 그냥 계모가 아닌 꽤나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면 아주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문제를 겪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행동까지 있었기에 아마 공공기관에 신고까지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친어머니를 여의시고 문제 많은 계모를 만나 힘든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다 일찍 결혼을 하시어 계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결혼 후에는 저희 엿가튼 아버지를 만나서 더 고생하셨죠. 나머지 식구들도 이런 할머니 밑에서 고생을 엄청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막내 이모가 직격타였다고 하는군요. 어쩌면 진짜가 아닌 사람 밑에서 자라서 그런건지 찐 사랑은 진작에 끝이 났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이번 장례식은 슬픔이 아닌 해방의 기쁨이 꽤 가득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장례식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으로 가득찬 장례식 보다는 즐겁고 기쁜 장례식이 존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살아생전 정말 부족함없이 해드리고 후회없는 효도를 했다면 기쁘게 보내는게 가능할까요? 아니 어쩌면 이런 끈끈한 관계일수록 잃은 슬픔이 더 크게 작용할지도 모르겠네요.


멕시코 장례식

아!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거의 5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죽음에 의한 헤어짐이 아닌, 그저 흔하디 흔한 만남과 이별의 헤어짐입니다. 그때의 후유증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어요. 헤어짐을 확정한 그 날 엄청 울었습니다. 못 해줬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았기 때문이죠. 이별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길더라고요. 물론 캐바캐겠지만요.


실제로 이별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커플도 있을겁니다. 장례식도 예외가 아니죠. 미국과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는 축제형 장례식 (Celebration of Life) 문화가 있습니다. 살아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먹고 음악을 틀며 그 분을 기억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인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그런 문화죠. 뉴올리언스 장례 퍼레이드 (Jazz Funeral) 라는 것도 있습니다.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례식에 재즈 음악을 연주합니다. 초반에는 느린 곡으로 고인을 추모하다가 묘지에 도착하면 신나는 곡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서 슬픔을 넘어 생명과 공동체를 축하합니다. 그 밖에도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라는 문화도 있고요. 생각보다 즐거운 장례 문화는 꽤 있더라고요.


솔직히

이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제가 돌연사를 하게 되면 남아있는 제 가족들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저와의 좋은 추억만을 기억해서 즐겁게 저를 보내줬으면 합니다. 저는 과학적인 측면을 좋아하기에 영혼에 대한 존재를 딱히 믿지는 않지만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영혼이 존재한다면 남은 가족들의 즐거운 모습을 지켜보고 떠나는게 제 입장에서는 훨씬 좋을 것 같거든요. 그래야 안심이 된다랄까요? 내가 없어도 되겠구나~ 라는 그런 안도감이죠.


번외편 : 남아선호사상의 산물

지금까지 할머니라고 표현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어머니의 계모이므로 즉 외갓집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라고 표현을 하죠. 저는 이 사실을 깨닫게 된지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남성우월주의 즉 남성 중심의 유교 사상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외가라는 형태의 혐오죠. 제 입장에서는 친가나 외가나 똑같은 할머니입니다. 따라서 굳이 "외"라는 단어를 갖다 붙여서 급을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남성 중심으로 장례 문화가 돌아가고 있음을 이번에 여실히 한번 더 실감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첫째 "딸"입니다. 즉! 장녀란 말이죠. 어머니는 4녀 1남 중 가장 첫째입니다. 따라서 상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주는 외삼촌의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삼촌이 가장 막내죠. 확실히 언급합니다. 젠더 성차별은 마치 숨 쉬듯 살아있습니다. 버젓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외편2 : 길냥이에게 온정을!!!

길냥이가 빈소까지 들어온다는군요!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바라는 부분이죠. 지금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고양이를 요물 따위로 치부하는 일부 몰지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귀신을 알아보고 쫒아낸다는 얼토당토않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장례식장에서 푸대접을 받는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제 장례식때는 고양이가 꼭 들어와서 밥이라도 얻어먹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댓글

  1. 죽음을 이 세상을 졸업하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거라 생각하면 슬플 이유가 없죠. 저도 아이들에게 제가 죽으면 당장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축하(?)해달라고 했습니다. 특히 오래 아프셨던 분이라면 고통에서 해방되는 거니...
    그나저나 고양이가 문상을 저렇게 온다면 반가울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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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습니다. 장례를 또 하나의 축제로! 그리고 고양이는 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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